새해가 밝았다. 여기저기서 모여든 달력 첫 장에는 2016년 1월. 삼백예순다섯날의 첫 시작을 알리는 가냘픈 숫자 ‘1’ 뒤로 어깨동무를 하듯 줄줄이 둘, 셋, 넷, 다섯…서른 하룻날의 숫자들이 새겨져 있다. 이날들은 ‘내일’을 예고하고, 그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낫겠지 라는 어렴풋한 소망을 품을 수 있어 좋다. 내일을 알리는 숫자들의 행진이 있는 달력을 보고 있으니 옛 생각이 난다. 오래전 누렇게 빛바랜 종이 벽에 매달려 있던 습자지처럼 얇은 일력(日曆)이 있었다. 큼지막한 숫자의 일력은 그 날 하루의 날짜만을 알려줄 뿐이었다. 일력 한장 한장은 그 하루가 지나고 나면 어김없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거나 위급한 때 화장실에서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하였지만, 하루살이 일력은 그 하루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라는 경고음이었다.
내일은 어김없이 찾아오겠지만 그 내일이 모든 이들이 누릴 수 있는 날은 아니다. 성서는 내일이 자기 것인 양 살아가는 인생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누가복음 12:20).” 자정을 넘겨 내일이라는 시간이 시작되기 전. 그날 밤에 생명의 주인께서 그 내일의 시간을 인생으로부터 회수하신단다.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는 “찾으리니” 이 말을 빌려준 것, 혹은 강탈당하였던 것을 되돌린다는 의미의 헬라어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 성서의 말에 근거하여 볼 때 시간은 나의 것이 아닌 빌려 쓰는 것이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인생은 시간의 채무자이다. 다만 그 시간을 빌려쓰는 동안에는 이자나 연체, 상환 날짜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인생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다.
성서는 또 이렇게 말한다.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이사야 2:22)” 코의 호흡이 사라지는 그 날을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유한한 인생을 사는 날 동안 시간을 무료로 빌려주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였는지에 대한 책임을 물을 날이 오고 있다. 따라서 내일은 나의 것이 아니기에, 시간의 주인으로부터 빌려 쓰는 인생이기에 지금 주어진 시간, 오늘 하루, 그리고 삼백예순다섯날을 살아갈 수 있는 코의 호흡이 유지되는동안 그 하루하루를 채우는 삶의 징검다리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 깊이 묵상하지 않을 수 없다. 떼어낸 달력 뒤에 숨겨져 있던 덜 빛바렌 네모난 달력 자국처럼 인생의 선명한 공백만을 남기라고 시간을 빌려준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안타깝겠도 시인 문인수의 “그렇게 또 한 해가 갔다. 공백만 뚜렷하다.” 처럼 얼마나 많은 인생이 공백만을 남기는 새해의 출발을 하였던가?
사진: 오병이어 교회 (갈릴리) 연자맷돌
뜨거운 열기가 땅을 달구던 스물넷의 여름 한날. 굴곡지고 주름진 손 마디 마디에 묻어난 사랑으로 품어주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셨던 아버지의 여윈 가슴을 안고 사랑 고백을 하였다. 그날 공백만 뚜렷하게 남아있던 삶의 자리를 ‘사랑’으로 채워야 함을 깨달았고 그것이 삶의 시간을 빌려주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임을 알았다. 십년 뒤 이스라엘행 비행기 표를 손에 쥐고 떠날 날을 기다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아들의 결혼식 날 단 한 번 신었던 구두 한 켤레만을 남기고 이 세상의 시간과 이별하셨다. 아버지의 시간은 그렇게 멈춰버렸지만 자식의 사랑고백을 안고 떠나셨다. 다들 그런다고 한다. 갑작스럽던지, 준비되었던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되고 빌린 시간의 끝이 왔을 때 남기고 싶은 말 한마디는 ‘사랑한다’ 라고. 세월호 침몰로 희생되었던 아이들이 그 깊은 죽음의 바닷속에서 휴대전화에 남긴 메시지 역시 ‘엄마, 아빠 사랑해!” 였다고 한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더는 늦춰선 안된다. 이번 새해는 사랑 고백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삼백예순다섯 징검다리의 이가 빠지지 않도록 매일 사랑 고백으로 채워야 한다.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 어제의 시간이기에 그 시간을 지워지지 않는 사랑으로 새겨야 한다. 삶의 무게가 실린 일력과 달력을 한장 한장 떼어낼 때마다 인생이 빌려쓰는 시간의 길이는 점점 짧아진다. 허나 그 시간에 남겨진 사랑의 체온은 영원하다. ‘말에는 체온이 있다!’ 어느 드라마에서 들은 말이다. 정상인의 체온은 36.5도이다. 우연한 일치일까? 한해도 365이다. 그 많은 날의 정상적인 체온 유지는 오직 사랑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할 때다. 시간과 생명의 주인 앞에 ‘사랑으로 체온 유지하였노라’ 고 말할 수 있는 그날은 오늘 시작할 수 있는 사랑실천을 내일로 미루지 않을 때 가능한 것이다. 내일은 나의 것이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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