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야곱 밀그롬이 BR에 올린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원문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너희 중에 거하는 나그네" 모든 나라에는 나그네와 영구 거주자가 있다. 토라는 우리에게 "게르(나그네)"를 억압하지 말고 친절과 사랑을 베풀라고 명한다.
by Jacob Milgrom (Biblical Review Dec, 1995)
성경 용어에서 "게르"혹은 "게르 토사브"는 일반적으로 "임시 체류자"를 의미한다. 따라서 얼핏 보면 이 단어는 비-이스라엘 사람만을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창세기와 출애굽기에는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아브라함은 헤브론 거주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창 23:4). 이집트에서 살았던 모세는, "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음이라" (출 2:22, 창 15:13 참조)고 말하였다. 사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땅에 나그네로 거하였다: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레 25:23). 더 나아가, 시편 기자는, "내가 땅에서 객이 되었사오니" (시 119:19)라고 고백하였다. 모든 사람은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창 2:15) 라는 말씀처럼 땅의 임차인으로서 책임이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사회에서 "게르"는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다른가? 게르는 이스라엘 사람 (히브리어로, 에즈라)도 이방인 (히브리어로 노키리)도 아니다. 실제 게르는 원래 이방인을 뜻하는 것이지만 거기에는 차이점이 있다. 이방인은 방문중인 상인이거나 고용된 외국인이다. (삼하 15:19); 그는 그가 살던 원래 고향에 결부되어 있으며 고향으로 돌아갈 의도를 가지고 있다. 다른 한편, 게르는 "나그네'이다. 그는 자신의 고향을 떠나서 이스라엘 땅에 들어와서 영구 거주자가 된 사람이다.
이와 동일하게, 역사적인 게르 (historical ger) 는 "에베드" (종)과는 반드시 구분이 되어야 한다. 역사적인 게르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동일한 사회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가지 예외 사항이 있다. 게르는 상속할 수 있는 땅을 소유할 수 없다. ( 겔 47:21-23에서 선지자는 이와 반대로 말한다). 고대 이스라엘처럼 농경중심의 사회에서는 게르는 이스라엘의 농부에게 고용되어 일을 하였다. 궁핍한 사람들은 레위인, 고아 그리고 과부등과 함께 보호 대상으로 등록이 되어 있었다 (신 26:12) 그리고 억압과 착쥐로 노출된 이들이었다. (겔 22:7)
틀림없이, 어떤 나그네들은 부유해지기도 하였다. (레 25:47) 그리고 높은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에돔 사람 도엑 (삼상 21:8), 암몬 사람 셀렉 (삼하 23:37), 그리고 헷 사람 우리아 (삼하 11:3) 등은 정부와 군대에서 높은 지위에 있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에 완전히 동화된 사람들로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는데 매우 열심이 있기도 하였다 (도엑과 우리아의 경우). 그러나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으로 간주되지는 않았고 여전히 자신의 민족의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하나의 예로 들수 있는 것이 바로 모압 여자 룻의 경우이다. 룻이 시어머니인 나오미와 함께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왔을때, 룻은 자신을 이방 여인이라고 고백하였다 (룻 2:10). 결국 그녀는 나그네로 거주하게 되었지만 이스라엘 사람이 되지는 않았다. 심지어 엘리멜렉의 유력한 친족인 보아스와 결혼을 한 후에도 그녀는 여전히 이방 여인으로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오랜 동안 결혼은 게르가 이스라엘 사람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게르 그/그녀 자신이 이스라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3대 자손만이 이스라엘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신 23:2-9).
성경 시대를 좀더 보도록 하자. 종교적 개종은 이스라엘 사람이 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이 아니었다. 비록 어떤 사람이 한 나라의 종교를 선택하고 개종함으로 이스라엘 사람을 만들어 낼수 있지만 ( 오늘날 개종을 통해 유대교인이 될 수 있지만 유대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는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닌 시대가 흘러가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룻이 나오미에게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 1:16) 라는 고백을 통해 룻은 원인과 결과의 법을 성취하였다. 룻은 자신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맡김으로서 그녀는 자동적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개종"은 그녀를 이스라엘 사람으로 만들지는 못하였다.
성경적 게르를 사회-정치적인 측면으로 적용을 하면 그 범위가 더 넓어진다. 모든 나라 (적어도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는 게르가 영구 시민이 될 수 있도록 보장을 해 준다. 게르는 선거권을 제외한 권리와 책임을 기존 시민들처럼 갖게 된다. 하지만 토라는 율법으로 게르를 보호하기 위해 그 대우에 있어 기존 시민과의 동등함 이상의 것을 부여한다. 토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집트에서의 경험을 기억하라고 명한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정경을 아느니라" (출 23:9). 기존 시민과 게르와의 관계를 얼마나 강조하는가? 이것에 대해 토라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 (신 10:19). " "너희와 함게 있는 타국인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객이 되었더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레 19:34)
성경의 게르라는 용어가 사용된 많은 경우는 현대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째로, 시편 기자가 고백하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땅에 거하는 게르이다. 유래없는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은 성경적인 전제하에 우리에게는 지구 환경을 오염시키거나 자원들을 낭비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니라" (시 24:1)
미국인들은 스페인계 사람들이 미국 남쪽 경계에 홍수처럼 밀려든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성경적 명령을 준행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게르들을 사랑해야 하며, 우리의 마음과 생명으로 그들을 용인해야 한다.
현대 이스라엘에게 있어 게르의 문제는 매우 심각한 이슈이다. 현 상황은 창세기와는 정 반대이다. 이스라엘은 땅의 게르로 시작하였다. 오늘날 이스라엘 땅에 진정한 게르는 바로 이스라엘계 아랍인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유대인과 운명을 함께 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의 선거에 의하면 팔레스틴 정부가 형성되었지만, 이스라엘계 아랍인들은 이스라엘의 시민으로서의 삶을 영위하기록 결정을 한 사람들이 다.
토라의 관점에서 볼때 게르에 대한 처우는 민주주의의 정도를 시험하는 것이며 인간의 도덕적 고결함에 도전을 던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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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중에 거하는 나그네" 모든 나라에는 나그네와 영구 거주자가 있다. 토라는 우리에게 "게르(나그네)"를 억압하지 말고 친절과 사랑을 베풀라고 명한다.
by Jacob Milgrom (Biblical Review Dec, 1995)
성경 용어에서 "게르"혹은 "게르 토사브"는 일반적으로 "임시 체류자"를 의미한다. 따라서 얼핏 보면 이 단어는 비-이스라엘 사람만을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창세기와 출애굽기에는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아브라함은 헤브론 거주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창 23:4). 이집트에서 살았던 모세는, "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음이라" (출 2:22, 창 15:13 참조)고 말하였다. 사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땅에 나그네로 거하였다: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레 25:23). 더 나아가, 시편 기자는, "내가 땅에서 객이 되었사오니" (시 119:19)라고 고백하였다. 모든 사람은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창 2:15) 라는 말씀처럼 땅의 임차인으로서 책임이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사회에서 "게르"는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다른가? 게르는 이스라엘 사람 (히브리어로, 에즈라)도 이방인 (히브리어로 노키리)도 아니다. 실제 게르는 원래 이방인을 뜻하는 것이지만 거기에는 차이점이 있다. 이방인은 방문중인 상인이거나 고용된 외국인이다. (삼하 15:19); 그는 그가 살던 원래 고향에 결부되어 있으며 고향으로 돌아갈 의도를 가지고 있다. 다른 한편, 게르는 "나그네'이다. 그는 자신의 고향을 떠나서 이스라엘 땅에 들어와서 영구 거주자가 된 사람이다.
이와 동일하게, 역사적인 게르 (historical ger) 는 "에베드" (종)과는 반드시 구분이 되어야 한다. 역사적인 게르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동일한 사회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가지 예외 사항이 있다. 게르는 상속할 수 있는 땅을 소유할 수 없다. ( 겔 47:21-23에서 선지자는 이와 반대로 말한다). 고대 이스라엘처럼 농경중심의 사회에서는 게르는 이스라엘의 농부에게 고용되어 일을 하였다. 궁핍한 사람들은 레위인, 고아 그리고 과부등과 함께 보호 대상으로 등록이 되어 있었다 (신 26:12) 그리고 억압과 착쥐로 노출된 이들이었다. (겔 22:7)
틀림없이, 어떤 나그네들은 부유해지기도 하였다. (레 25:47) 그리고 높은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에돔 사람 도엑 (삼상 21:8), 암몬 사람 셀렉 (삼하 23:37), 그리고 헷 사람 우리아 (삼하 11:3) 등은 정부와 군대에서 높은 지위에 있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에 완전히 동화된 사람들로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는데 매우 열심이 있기도 하였다 (도엑과 우리아의 경우). 그러나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으로 간주되지는 않았고 여전히 자신의 민족의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하나의 예로 들수 있는 것이 바로 모압 여자 룻의 경우이다. 룻이 시어머니인 나오미와 함께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왔을때, 룻은 자신을 이방 여인이라고 고백하였다 (룻 2:10). 결국 그녀는 나그네로 거주하게 되었지만 이스라엘 사람이 되지는 않았다. 심지어 엘리멜렉의 유력한 친족인 보아스와 결혼을 한 후에도 그녀는 여전히 이방 여인으로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오랜 동안 결혼은 게르가 이스라엘 사람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게르 그/그녀 자신이 이스라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3대 자손만이 이스라엘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신 23:2-9).
성경 시대를 좀더 보도록 하자. 종교적 개종은 이스라엘 사람이 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이 아니었다. 비록 어떤 사람이 한 나라의 종교를 선택하고 개종함으로 이스라엘 사람을 만들어 낼수 있지만 ( 오늘날 개종을 통해 유대교인이 될 수 있지만 유대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는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닌 시대가 흘러가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룻이 나오미에게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 1:16) 라는 고백을 통해 룻은 원인과 결과의 법을 성취하였다. 룻은 자신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맡김으로서 그녀는 자동적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개종"은 그녀를 이스라엘 사람으로 만들지는 못하였다.
성경적 게르를 사회-정치적인 측면으로 적용을 하면 그 범위가 더 넓어진다. 모든 나라 (적어도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는 게르가 영구 시민이 될 수 있도록 보장을 해 준다. 게르는 선거권을 제외한 권리와 책임을 기존 시민들처럼 갖게 된다. 하지만 토라는 율법으로 게르를 보호하기 위해 그 대우에 있어 기존 시민과의 동등함 이상의 것을 부여한다. 토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집트에서의 경험을 기억하라고 명한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정경을 아느니라" (출 23:9). 기존 시민과 게르와의 관계를 얼마나 강조하는가? 이것에 대해 토라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 (신 10:19). " "너희와 함게 있는 타국인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객이 되었더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레 19:34)
성경의 게르라는 용어가 사용된 많은 경우는 현대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째로, 시편 기자가 고백하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땅에 거하는 게르이다. 유래없는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은 성경적인 전제하에 우리에게는 지구 환경을 오염시키거나 자원들을 낭비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니라" (시 24:1)
미국인들은 스페인계 사람들이 미국 남쪽 경계에 홍수처럼 밀려든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성경적 명령을 준행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게르들을 사랑해야 하며, 우리의 마음과 생명으로 그들을 용인해야 한다.
현대 이스라엘에게 있어 게르의 문제는 매우 심각한 이슈이다. 현 상황은 창세기와는 정 반대이다. 이스라엘은 땅의 게르로 시작하였다. 오늘날 이스라엘 땅에 진정한 게르는 바로 이스라엘계 아랍인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유대인과 운명을 함께 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의 선거에 의하면 팔레스틴 정부가 형성되었지만, 이스라엘계 아랍인들은 이스라엘의 시민으로서의 삶을 영위하기록 결정을 한 사람들이 다.
토라의 관점에서 볼때 게르에 대한 처우는 민주주의의 정도를 시험하는 것이며 인간의 도덕적 고결함에 도전을 던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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