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텔 아라드의 고대 이스라엘 거주지 전경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성서 네러티브 읽기 수업 정리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읽는 성서는 처음부터 장과 절이 구분된 것이 아니었다. 성서의 장절 구분은 13세기경의 스트브 랭턴에 의해 이뤄졌는데, 그의 장절 구분은 신학적 이데올리기와 변증이라는 목적을 두고 행한 것이다. 예를 들어, 창세기 1장은 창조 6일째 사건과 함께 끝을 맺는다. 2장으로 넘어가서 7일째 사건이 나오는데, 그렇다면 왜 연속선상에 있는 창조 사건이 이렇게 장으로 나누어져 있는가? 랭턴의 의도는, 유대인들에게 7일째, 즉 안식일은 최고의 축복의 날이고 창조 기사의 중심이다. 하지만 기독교의 입장에서 볼때, 안식일보다 인간의 창조야 말로 창조의 왕관이다. 그렇기 때문에 랭턴은 안식일 기사를 2장으로 넘긴 것이다.
성서의 장절 구분은 랭턴 이전에도 이미 존재하였는데, 본 과목에서는 이를 다루지 않겠다. 다만 쿰란 문서에서도 장절 구분의 예를 찾아 볼 수 있고 맛소라 사본에서도 파툭카 (열린 문단)와 쓰투마 (닫힌 문단) 으로 문단 구분이 되어 있다. 성서를 연구할때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장 절의 구분보다는 문학적인 단위를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각각의 이야기에 나타나는 경계선을 찾아야 한다
사진: 텔 아라드의 이스라엘 주거지 성내에 있는 성소와 지성소입니다.
왕상 13장 이야기를 짧게 요약해 보자.
등장 인물: 유다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 여로보암, 요시아, 벧엘에 거하는 늙은 선지자, 그의 아들들, 동네 사람들과 나귀, 사자
사건: 하나님의 사람은 벧엘에 제단을 만든 여로보암에게 훗날 요시아에 의해 제단이 파괴되고 제단의 제사장이 제단위에서 죽임을 당할 것을 예언한다. 이 예언을 마치고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도로 가지도 말라")에 따라 다른 길로 돌아가는 길에 벧엘의 늙은 선지자에게 속아서 선지자의 집에서 음식을 먹게 된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사람은 돌아가는 중 사자에게 죽임을 당하고,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의 시체를 자신의 묘실에 장사하며 자신이 죽게 되면 하나님의 사람이 안치된 묘실에 장사 지내달라는 유언을 남기게 된다.
성서 이야기속에는 등장 인물의 이름을 알리지 않는 경우와 이름을 밝히는 경우가 있다. 왕상 13장에는 두 인물의 이름이 언급되는데, 여로보암과 요시아이다. 나머지 인물들은 무명으로 등장한다. 왕상 13장에서 여로보암과 요시아는 이야기 전개상 주요인물로 보이지 않지만, 사실은 무명으로 등장하는 인물보다 오히려 사건의 중심 인물들이다. 무명으로 등장하는 두 인물, "유다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과 "벧엘의 한 늙은 선지자"는 13장 이야기의 구조를 세우는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한다.
히브리 성서 본문에서 이 인물들에 대한 소개를 보도록 하자.
이 두 구절에서 대칭 구조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 - 늙은 선지자 // 유다 - 벧엘) . 왜 한명은 "하나님의 사람"이라 불리고 다른 한명은 "선지자"라고 불리는가? 이 두명에게 붙여진 별명 (하나님의 사람 & 선지자)은 서로 바꿔쓸 수 있는 것인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표현은 직접적으로 하나님과의 조우를 하는 인물을 뜻하며, "선지자"는 사회속에서 하나님과 다른 신들과의 관계속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상황에 답을 주는 기능을 수행한다.
"선지자"의 기능은 성서에서 부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항상 긍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성서에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린 인물들을 몇명 살펴보면, 모세, 사무엘, 엘리야, 엘리사 등이 있다. 성서에서 "하나님의 사람"은 초인적인 능력을 행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엘리사는 수넴 여인이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해 주었고 , 마노아의 부인 역시 하나님의 사람 (혹은 천사)을 만난 후에 삼손을 낳았다. 혹은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한다. .사실 "하나님의 사람"은 성서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델이다.다른 말로, 성서의 모델은 별명을 얻게 되는데 그 별명이 붙여지게 된 구체적인 이유가 제시되며, 별명을 붙이기 위해 다른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예들을 찾게 된다. (사실 이 부분을 한글로 옮기기가 애매모호한데, 좀더 풀어서 말하지만,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에 별명을 붙이거나, 장소에 특정 명칭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관련 사건과 연관있는 어원적 표현을 찾아 별명을 붙이게 된다는 뜻.)
어떤 이야기 양식에는 사건의 전개가 극단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양상을 띄는 것이 있는데 이런 이야기 양식은 전개되는 이야기 특징의 조화를 꾀하며 긴 이야기속에 인물들의 행동방식을 묘사한다. 이에 반해 사이클 양식을 취하는 이야기에서는 사건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고 이야기속에서 일정부분을 발전시킨다. 사건의 이미지들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전개 될 수 있으며 널리 퍼진 양식의 이야기 전개와 사이클처럼 돌아가는 이야기 전개를 동시에 취할 수 있다.
13장에서 "하나님의 사람"은 널리 퍼져있는 양식의 이미지를 보여주는가? 아니면 사이클 양식을 취하는가? 13장에서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은 매우 용감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는 왕 앞에서 담대히 하나님의 예언을 선포한다. 그리고 왕의 제안을 뿌리친다. 그는 기적을 행하기도 하고 위함에 빠지기도 한다.
벧엘의 늙은 선지자 이야기를 보도록 하자. 늙은 선지자는 다른 길로 가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가 그를 속여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다. 식사 중에 늙은 선지자는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한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돌아와서 여호와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한 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 네 시체가 네 열조의 묘실에들어가지 못하리라" (21-22절)고 말한다. 그 후 "하나님의 사람"은 사자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의 시체를 가져다가 자기 묘실에 장사한다. 선지자는 아들들에게 자기가 죽게 되면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에 함께 장사지내라는 유언을 남긴다. 왜 그런 유언을 남겼을까?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의 예언이 성취될 것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 제사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 사르리라" - 2절)을 알았다. 이로 보건데, 그 늙은 선지자는 "산당 제사장"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자신이 죽은 후에 그 뼈를 하나님의 사람의 예언으로부터 보호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의 죽음은 어떠한가? 길을 행하던 하나님의 사람은 사자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만 사자는 그를 먹지도 않고 오히려 지켜준다. 이로 보건데, 늙은 선지자에 속아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지만, 사자가 본성을 거스리고 그를 먹지 않은 것은 일종의 기적과 같은 일이며, 하나님의 사람의 죄가 용서를 받았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From class note of Biblical Narrative of Dr. Leah Mazor (the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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