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베들레헴의 장벽입니다. 장벽 바깥쪽에는 라헬의 묘가 있습니다.
베들레헴으로 들어가는 장볍 입구 오른쪽에 작은 문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라헬의 묘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정통 유대인들에게는 성스러운 곳이기에 그 곳을 드나드는 유대인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한때는 이 라헬의 묘를 두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고, 베들레헴 안쪽 라헬의 묘가 있는 장소 위로는 군인들이 경계 근무를 서는 망대와, 굳게 닫혀 있는 문, 그리고 낙서와 그을린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야곱 일행은 벧엘을 뒤로하고 남북으로 길게 뻗은 유대 중앙산악지역 (족장의 길) 길을 따라 남쪽 헤브론으로 진행하였다 (창 35:27). 라헬의 죽은 후 그녀는 “에브랏”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장사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에브랏은 어디인가? 얼핏 보기에,그 답은 매우 간단해 보인다. 창 48:7에의하면 에브랏은 베들레헴으로 일컬어 진다. 창세기뿐 아니라 다른 성서에서도 에브랏은 베들레헴과 동일한 마을로등장한다. 삼상 17:12에, 다윗은 자신을 “유대 베들레헴 에브랏” 출신이라고 말한다.룻기 1:2에서는, 나오미와 남편 엘리멜렉그리고 그의 두 아들을 “유대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 이라고 말한다.미가서 5:2에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라는 표현이 있고, 다시 룻기 4:11에서는보아스를 향해 “네게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전히 에브랏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라헬이 베냐민혹은 요셉 지파의 땅에서 장사가 되지 않고 유대 지경의 베들레헴에 장사된 것은 이상한 일이다. 또한,삼상 10:2에는 라헬의 무덤에 대한 다른 견해가 등장한다. “네가 오늘 나를 떠나가다가 베냐민 경계 셀사에 있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리니” “오늘날까지 “셀사”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진 바가 없다.하지만, 본문의 내용은 분명히 베냐민 경계 혹은 그 경계에 가까운 곳에 라헬의 묘가있다고 말한다. 렘 31:15는 삼상 10장의 장소에 라헬의 묘가 있었다는 것을 지지한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라마에서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라마는 베냐민 지파의 경계 안에있는 마을이다. – 역자 주)
라헬의 묘에 관한 이 두 전통은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랍비 문학은 이 두 본문의조화를 이루기 위한 시도를 한다. 토세프타 소타 11:11, 그리고창세기 랍바 82:10 은 이 조화를 꾀하는 본문들이다. 렘31:14에 나오는 “라마”가 실제로 예루살렘에서북쪽으로 약 8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er- Ram을 가리키는지는 매우 불분명하다.어쩌면 본문의 “라마”는 단순히 "높은 곳”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 탈굼 요나단 (아람어 역본),랍비 요셉 카라, 그리고 라닥은 라마를 높은 곳으로 해석한다. 항상 장소는 정관사와 함께 등장하지만 본문에서는 정관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상 10:2의 진술을 뒤바꿀만한 것은 못된다. 분명히 삼상 10:2는 창 35:19와는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창 35:19는 먼저 “에브랏”이라는 지명이 먼저 등장하고 나서, 부차적으로 베들레헴과 연관을 짓는다. 시 132:6은 삼상 6-7에 나오는 법궤의 이동을 시적으로표현한다. “우리가 그것이 에브라다에 있다 함을 들었더니 나무 밭에서 찾았도다” 이 시에 의하면 법궤는 “에브랏 (에브라다)에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등장하는 에브랏과 베들레헴을동일시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법궤가 베들레헴에 머물렀다는 것을 지지할 만한 성서의 구절이 없기 때문이다.6절에 등장하는 에브랏의 병행 싯구인 “야르 지역 (theregion of Jaar – 히브리어 – 싸데 야르)은 틀림없이 삼상 7:1에 나오는 “기럇여아림”이다. 바꿔 말하면, 당시에는 에브랏과 기럇여아림 –베냐민 지파와 유대 지파의 경계선에 있는 마을-을 동일시 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있다.
사진: 베들레헴의 야경입니다.
현재 기렷여아림은 벧호린 길에서 약 13킬로미터 정도 서쪽에위치해 있는 “아부구쉬”이다. (참조 수 15:9-10, 18:14-15). 따라서 베들레헴과 기럇여아림 둘 마을 모두 에브랏으로불려졌다고 볼 수 있다. 성서의 여러 구절들은 에브랏 문중이 베들레헴과 기럇여아림 지역의 유력한 집안이었다고말한다. 이를 가장 분명하게 증거하는 구절은 대상 2:50-51이다.“갈렙의 자손 곧 에브라다의 맏아들 훌의 아들은 이러하니 기럇여아림의 아버지 소발과 베들레헴의 아버지 살마와 벧가델의아버지 하렙이라” 이 본문에 의하면 에브랏의 후손들은 기럇여아림의 아버지와 베들레헴의 아버지로 불렸다.
라헬의 묘의 위치에 대한 원 전통 (The original tradition)에 의하면 그 묘는 에브랏가문이 다스리고 있던 에브랏이라는 곳에 있었다. 좀더 분명히 말하자면, 삼상 10:2에 따르면 그 묘는 베냐민 지파의 경계선 상에 있었다. 베들레헴이 에브랏의 주도권 아래 편입 되었을때, 베들레헴 역시 에브랏으로 불리게 되었다.그런 이유로 창 35:19에서 에브랏이라는 지명과 함께 베들레헴이 등장하는 것이다.(한글 성서에서는 “에브랏 곧 베들레헴” 이라고나오지만,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에브랏-현재는 베들레헴이라고 불리는”이라고 읽을 수 있다. (Ephrathite – now Bethlehem).
라헬이 죽은 이후 야곱의 이동 경로를 보면 이 결론이 옳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야곱은 라헬을 장사지낸후에 에델 망대 (the tower of Eder – 어린양의 망대)를 지난다. 미가서 4:8에 의하면 에델 망대는 베들레헴에서북쪽에 위치한 예루살렘쪽에 있었다. 만일 라헬의 묘가 베들레헴에 위치해 있다면, 그는 남쪽 방향 (헤브론 방향)이 아닌 정반대로 갔다는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미쉬나의 세칼림 7:4에도 그 증거가 나온다.만일 라헴의 무덤이 벤자민 의 경계선에 있다면, 야곱 일행은 불필요한 방향 전환을한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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