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는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약 30km 떨어진 ‘모레셋’ 출신이다. 미가서 1장 1절에 의하면 그는 요담. 아하스. 그리고 히스기야 시대 (대략 주전 737-698년 사이)에 이사야, 아모스, 그리고 호세아와 함께 선지 활동을 하였다. 이 당시 남유대 왕국은 앗수르의 침공과 지배, 북 이스라엘과의 악화된 관계, 경제 불황, 리더십의 부재 등의 복합적인 문제들속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고 있었다. 이런 암울한 상황속에서 미가는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을 향하여 선지서의 공통된 메세지인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을 전한다.
사진: 성서 시대의 망대
미가는 그 시대의 사회. 정치. 종교 지도자들의 타락상을 직설적으로 고발한다. 지도자들은 정의를 미워하였으며 공의가 없는 재판을 행하였다. 그들의 손은 부정, 돈, 뇌물로 더러워졌고 가난한 백성을 억압하기에 바빴다. 그들은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의 성으로 채우는 이들이었다 (미 3:10). 수전노! 그들은 최고의 가치를 돈에 두었고 돈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 두령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치면서…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미 3:11). 자칭 선지자들은 거짓된 평강. 돈을 위한 평강. 대중의 인정과 지지, 귀를 즐겁게 하는 메세지만을 전하였다.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는 이에 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 (미 3:5). 정의, 공의, 그리고 진리가 돈과 권력의 힘에 의해 결정되고, 좌지우지되는 시대에 선지자는 홀로 서 있었다.
미가 시대 당시 북이스라엘은 멸망의 낭떠러지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그들이 붙잡아야 할 것은 썩은 동아줄같은 우상들이 아닌 그들을 향해 회개와 돌이킴을 요구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었다. 그러나 사마리아는 돌이키지 않았고 무너졌다 (주전 722년). “이러므로 내가 사마리아로 돌의 무더기 같게 하고… 그 돌들을 골짜기에 쏟아 내리며..그 새긴 우상을 다 파쇄하고…”(미 1:6-7). 남 유대의 지도자들은 사마리아의 멸망을 급변하는 국제 정세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한 나라의 흥망성쇠의 이야기로 간과해서는 안되었다. 미가는 사마리아의 멸망이 남 유대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임을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유대의 지도자들은 죄악의 무감각증에 빠져 있었고 유대를 향한 하나님의 재앙의 시간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족속(유대)에게 재앙 내리기를 계획하나니 …이는 재앙의 때임이니라” (미 2:3).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들은 영원하리이다” (시 119:160).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당대의 지도층이 정의와 공의,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를 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진리는 영원한 것이다. 선지자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담대히 선언한다. “말일에 이르러는…많은 이방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미 4:1-2). 시대의 풍조에 따라 변조되지 않는 진리앞에 이방의 백성들이 설 것이다. 타락하였던 예루살렘이 말씀으로 회복되고 열방이 영원한 진리를 그 거룩한 말씀의 성에서 배울 것이다.
그날은 이미 오고 있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 미가는 그 산골에서 태어날 미래의 참된 지도자, 정의, 공의, 그리고 진리를 가르칠 메시야의 탄생을 미리 내다 보았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대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미 5:2). 훗날 마태는 미가의 예언이 예수님의 베들레헴 탄생을 통해 성취되었음을 생생하게 기록한다. 먼 동방에서 찾아온 박사들은 과거 이방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몰려들어 하나님의 진리를 배우게 될 것이라는 미가 선지자의 예언 (미 4:1-2)이 일부 성취된 것이다. 하나님의 정의, 공의, 그리고 진리는 악한 지도자들과 타락한 종교인들에 의해 일시적으로 가리워질 수는 있으나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을 미가는 알고 있었다.
한편, 미가 시대는 무수한 예배 행위가 건강한 종교적 삶의 척도로 여겨지던 시대였다. 여호와께서는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는 줄로, 심지어 맏아들을, 몸의 열매를 요구한다는 거짓된 믿음이 팽배하였다 (미 6:7). 과연 하나님께서 무수히 드려지는 제의 의식을 기뻐하시는가? 미가는 이렇게 답한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 6:8). 공의가 빠진 예배. 인자가 빠진 사랑. 하나님과 동행함이 없는 예배는 떠들썩한 굿판과도 같은 것이다.
부정과 부패로 더러워진 손, 정의와 공의가 실천되지 않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예배임을 미가는 지적한다. 예배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그 예배는 성전에서만 드려지는 시간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다. 예배는 숨을 쉬고 있는 그 모든 순간, 삶의 구석 구석을 통해 드려져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미가는 하나님과의 동행하는 삶을 당대의 백성들과 성서의 독자들에게 요구한다.
미가는 권력자들과 사회 지도층, 종교인들에게 실망하였다. 경제 부흥을 일으켰던 요담. 앗수르의 종이 된 아하스. 한때 경건하였으나 교만병에 빠졌던 히스기야. 돈을 위해 하나님의 진리를 팔았던 제사장들과 선지자들. 미가는 이들에게 소망을 둘 수 없었다. 소망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있었다.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들으시리로다” (미 7:7). 죄악을 사유하시며, 긍휼을 베푸시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져 넣으시는 하나님, 그리고 인애를 더하시는 하나님 (미 7:18-20) 그 분만이 선지자의 소망이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열심으로 유대 나라를 회복하실 그 때를 기다렸다.
*** 위 글은 기독교 잡지 "새가정사" 2월호에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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