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 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 αγραμματοι εισιν και ιδιωται)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행 4:13).
본 글은 "학문없는 범인"(행 4:13)이라는 말의 의미가 어떤 의미인지를 1세기 시대 당시의 상황과 성서 택스트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정리한 것이다.
이야기는 사십여세된 태어나서 한번도 걸어보지 못하였던 걸인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치유한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성전 미문에 앉아 있었던 걸인. 그는 한번도 걸어본 적이 없었다. 늘 미문에 앉아 성전을 오고가는 유대인들에게 그는 손을 내밀었고, 그 미문을 이용하는 유대인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인물이기도 하였다. 그가 일어났다. 지팡이를 의지해서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서 힘이 없는 발이 대롱 대롱 메달린채 일어난 것이 아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발과 발목에 힘을 얻게 되었고 일어나 걷기도, 뛰기도 하며 성전 안으로 들어갔다.
이 사건으로 인해 베드로와 요한은 관원들에게 잡혔고 감옥에 투옥되었다. 다음날 산헤드린 관원들. 장로들. 서기관들의 긴급 회동이 있었고, 그 자리에는 대제사장 안나스, 가야바 요한. 알렉산더, 그리고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석하였다. 이들은 얼마전에 있었던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류된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는지, 그리고 걷지 못하던 걸인이 치유된 사건의 경유를 물었고 베드로는 담대하게 그 앞에 선 인물들이 사주하여 주였던 예수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걷게 되었음을 증언한다.
이때, 베드로와 요한의 말을 들던 자들이 놀라며 한말.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라는 부분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어떤 이들은 베드로와 요한의 직업과 이 구절을 연결하여 해석 한다. 그들은 갈릴리의 어부였다. 당시 어부라는 직업은 배우지 못한 이들이었다고 섣부른 판단을 한다. 과거 우리나라의 농업이나 어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정규 학업 과정을 이수하지 못한 경우를 어부인 베드로와 요한에게 투영하여 그들이 배우지 못한 이들이라고 결론짓는 이들이 있다 (본 글은 정규 학업 과정을 이수하지 못한 이들에 대한 그 어떤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음을 밝힌다). 이 해석은 본문이 말하는 의미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먼저 오늘날의 특정 직업이나 학업 과정을 1세기 당시의 직업에 그대로 적용하여 해석해서는 안된다. 현 시대와 과거 사이에 있는 시간. 문화. 역사. 그리고 사회 환경상의 차이점들이 있다. 따라서, 이는 마치 현대인들은 교통수단으로 자동차를 이용하는데, 과거에는 왜 자동차가 아닌 마차를 이용하였을까? 라는 어리석은 질문과도 같은 것이다. 현 시대 상황이 성서 본문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 본문이 현 시대를 해석하고, 현 시대는 성서 본문의 해석을 적용하는 현장이 되어야 한다.
"본래 학문없는 범인" 이란 말은 무슨 의미인가? 먼저 성서 컨택스트의 의미를 살펴보자. αγραμματοι (uneducated. 학문 없는) 이란 뜻은 "글을 알지 못하는" 이란 의미가 아닌 전문적인 성서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위대한 랍비들이 있었다. 샴마이와 힐렐 학파가 있었다. 바울은 가멜리엘 문하생이었다 (행 22:3). 유대교내의 여러 분파들 예를 들면,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 파등은 성서 교육 체계를 갖추고 있었고 유대인들은 그 분파내에서 성서 교육을 받았다. 회당에서는 모세의 자리에 앉아 백성을 가르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있었다 (마 23:2). 재판 자리에 앉아있던 이들 (산헤드린 공회원. 서기관. 제사장들) 입장에서 볼때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들이 받아온 혹은 가르치는 성서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학문 없는" 이란 표현을 한 것이다. 다음으로 "범인 (ιδιωται,amateurs)" 이란 의미 역시 재판 자리에 앉아 있던 자신들과 비교해 볼때 베드로와 요한은 그 어떤 정치적, 서기관적, 혹은 제사장적인 가문의 뿌리가 없는 평범한 인물들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재판자리에 앉아 있던 이들의 말대로 베드로와 요한은 성서 교육을 받지 못한 학문 없는, 그리고 자신들처럼 권력이나 엘리트 층에 속하지 않은 평범한 이들이었을까? 두번째는 양측을 비교해 보았을때 맞는 말이다. 베드로와 요한은 평범한 시민이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이 성서 교육을 받지 못한 "학문 없는" 이들이라는 그들의 판단에는 문제가 있다. 물론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의 엘리트층처럼 전문적인 성서 교육 과정을 이수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복음서와 사도행전 2-4장을 잘 읽어보면 이들이 성서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이들의 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들어 안드레는 예수를 만난 이후 그의 형제 베드로를 찾아가서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요 1:41)라고 말한다. 무엇에 근거해서 안드레는 베드로에게 메시야를 만났다고 말하였을까?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었던 빌립은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다"(요 1:45)라고 말한다. 이들이 구약 성서가 증거하는 메시야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면 이런 말은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예루살렘의 엘리트층처럼 전문 성서 교육은 받지 않았을지라도 성서 교육을 받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들의 성서 지식이 얄팍한 것도 아니다.
사도행전 1-4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대중 설교 혹은 형제들 사이에서 그가 한 말들을 살펴보면, 그가 구약 성서를 인용하는 장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1)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시 69:25) / 2).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욜 2:28ff)/ 3) 다윗이 그를 가르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시 16:8 ff)/ 4)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5).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6)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7)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시 118:22) / 8)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시 2:1,2).
위에서 언급한 8번의 경우들은 베드로가 구약성서에 대한 지식이 "학문 없는" 사람이라고 비웃거나 그가 성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는 증거들이다. 물론 베드로가 이렇게 예수의 주와 메시야 되심을 구약 성서를 인용하여 변증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분명하신 역사가 있었다 (행 2:4; 4:8). 그러나 성령의 역사하심과 함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유대의 세대를 잇는 종교 교육이다. 쉐마 이스라엘 (이스라엘아 들으라 신 6:4)는 유대인들의 세대간 종교 교육의 좋은 실례이다.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신 6:6-7)." 성서 시대 당시에는 성서가 흔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인쇄 기술이 없었기에 성서는 수기로 기록되었고 가정집에서 소유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신명기 저자는 왕이 권좌에 앉을때에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신 17:18)" 부지런히 그 율법을 배우라고 명한다. 왕은 등사본 성서를 소유하였다는 증거이다. 요시야 시대에는 (주전 622년)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되었다. 율법책, 즉 성서가 흔하였다면 그 책을 발견한 것이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듣는다. 그리고 기억한다. 그리고 그 자녀에게 가르친다. 듣고 기억하고 가르치는 것 이 사이클은 세대와 세대를 이어 전해 내려오는 성서 교육이다. 회당에서 유대인들은 랍비로부터 성서를 배웠다. 일년 세차례의 절기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들은 유대의 성서 교육의 중요한 예가 되기도 하며, 전 세대가 이 절기들을 통해 유대의 성서가 증거하는 과거의 역사를 배운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 역시 그들의 부모 세대로부터, 그리고 회당에서 성서를 배우고 기억하였다. 손에 성서가 들려져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기억 주머니에는 늘 성서가 있었다. 따라서, 베드로가 학문없는 사람이라는 재판 자리에 있던 예루살렘의 엘리트층의 말은 그들이 누리고 있던 최고의 종교 교육 시스템이라는 눈으로 베드로를 비웃듯 말하였지만 베드로는 절대 학문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학문 없는 범인" 이라는 말의 의미는 그 재판 자리에 있던 이들이 받았던 종교 교육을 받지 못하고 제사장이나 정치인들이 가문에서 출생하지 않은 갈릴리의 평범한 어부 출신 베드로에게 한 말이다. 베드로가 어리석거나 혹은 무식하다는 말이 아니다.
베드로가 거주하였던 갈릴리 바다 북쪽의 벳새다 그리고 가버나움은 1세기 당시 국제 무역 도로가 통과하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에루살렘의 종교 교육 현장에 그는 없었다. 그는 어떤 학위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베드로는 당시 세상 돌아가는 물정에는 예루살렘의 재판 자리에 앉아 있던 이들보다도 더 밝았을 것이다. 지리적으로 예루살렘은 고립되기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국제 도로가 없다. 높은 산위에 위치해 있다 (해발 750미터 이상). 물을 얻기도 어렵다. 농사 지을 수 있는 땅도 턱없이 부족하다. 고립의 최적 조건을 갖춘 도시가 예루살렘이다. 반면 갈릴리는 물. 도로. 식량의 최적지이다. 따라서 국제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고 베드로는 국제도시의 한 사람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분명 있었다.
한편, 재판 자리에 앉아 있던 이들의 말중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라는 부분을 주목해 볼 필요성이 있다. 학문없는 범인들롤 알았다 그러나 베드로가 구약 성서를 인용하여 예수의 주와 메시야 되심을 증거하는 것, 그리고 베드로의 수사학적 표현등은 그들이 예수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예수는 1세기 시대 당시 그 누구보다 유명한 랍비였고 이들의 그 랍비의 제자들이 아니었던가!
결론은 이렇다. 학문없는 범인 이라는 말은 세상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 글을 모르는 사람. 무식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다. 이 말은 성서 (종교)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 제사장이나 정치인과는 무관한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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