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마지막 장은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는 장이다. 모세는 느보산 정산에서 가나안 땅을 조망한 후에 최후를 맞이한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성서 사건들중 하나가 있다면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는 것이다. 40년을 광야의 양치기로 보냈고, 40년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이 눈앞에 보이는 여리고 맞은 편까지 왔다. 그러나, 그렇게 꿈에 그리던 약속의 땅을 들어가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인생의 마지막 호흡을 멈춰야만 했다.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으나 (신 34:7) 하나님께서는 그를 부르셨다. 어쩌면 모세에게 허락하신 죽음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은혜들중 가장 큰 은혜였을 수도 있다. 가나안 땅은 약속으로 주어졌지만 거져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땀과 피를 흘려야 했고 정복 전쟁을 치뤄야만 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전쟁이 아닌 죽음이라는 안식이라는 선물을 주셨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추론이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에 대한 시원한 답을 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신 32:51의 말씀처럼 "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가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내게 범죄하여 나의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연고" 라고 성서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로 보건데,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그의 범죄함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리신 벌은 어쩌면 너무나 가혹하다 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지도자가 아니던가? 지도자이기에 그의 행동에 따른 책임은 일반인들과는 그 무게감이 다르다.
성서는 모세의 죽음을 분명하게 언급한다.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벧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 묘를 아는 자 없으니라" (신 34:5-6). 성서는 철저히 성서 인물이 신격화 되는 것을 막는다.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적을 읽는 독자들은 성서 인물을 신화적 존재로 만들 수도 있는데 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성서 인물에 대한 죽음을 기록하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태양과 달을 멈춘 사건 (수 10:12-14)은 다분히 그를 신화적 인물로 여길수 있는 소지가 있다. 그래서 성서 저자는 여호수아의 죽음과 그의 묘지를 자세하게 언급한다. "이일 후에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일백 십 세에 죽으매 무리가 그를 그의 기업의 경내 딤낫 세라에 장사하였으니 딤낫 세라는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산 북이었었더라" (수 24:29-30).
사진: 엔게디의 산양
바르일란 대학 성서학과장인 아시스 선생님의 논문 "From Moses to Joshua and from the Miraculous to the Ordinary"에서 모세 오경에 등장하는 많은 기적들이 여호수아서로 넘어가면서 현저하게 줄어들게 됨을 지적한다. 이 역시 신화적인 요소들이 점진적으로 제거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모세와 여호수아의 공통점이 있다면 전혀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결국에는 "죽음"으로 그 생을 마감하였다는 점이다.
한편 엘리야 선지자의 삶은 모세와 자주 비교 대상이 된다. 모세가 40일을 시내산에서 금식하면서 하나님을 만났던 것처럼, 엘리야 역시 하나님의 산으로 가면서 40주야를 금식하였다. 모세는 홍해를 가랐고, 엘리야는 요단강을 갈랐다. 모세가 죽은 곳은 여리고 맞은 편 모압 땅에서 죽었는데, 엘리야 역시 여리고 맞은편에서 하늘로 올라갔다.
요세푸스와 미드라쉬에 의하면, 모세의 죽음에 의문 부호를 찍는다. 요세푸스는 모세가 구름속으로 사라져버렸다고 말한다. 바벨론 탈무드 역시 모세가 죽지 않았음을 언급한다. 토라는 모세의 죽음을 분명히 기록하였지만, 후대의 작품들은 모세의 죽음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무슬림들은 모세의 죽음에 대해 어떤 전통을 갖고 있을까? 무슬림들도 모세를 위대한 선지자로 인정한다. 이슬람 전통에 따르면, 모세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유대 광야에서 최후를 맞이하였다. 실제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 중간 즈음에 모세의 무덤을 성지로 만들어 놓고 순례객들이 방문을 하기도 한다.
본 글은 히브리대 야르 자코비치 교수의 글 "모세는 정말로 죽었는가?"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사진: 광야의 양우리
그러나, 이 추론이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에 대한 시원한 답을 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신 32:51의 말씀처럼 "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가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내게 범죄하여 나의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연고" 라고 성서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로 보건데,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그의 범죄함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리신 벌은 어쩌면 너무나 가혹하다 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지도자가 아니던가? 지도자이기에 그의 행동에 따른 책임은 일반인들과는 그 무게감이 다르다.
성서는 모세의 죽음을 분명하게 언급한다.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벧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 묘를 아는 자 없으니라" (신 34:5-6). 성서는 철저히 성서 인물이 신격화 되는 것을 막는다.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적을 읽는 독자들은 성서 인물을 신화적 존재로 만들 수도 있는데 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성서 인물에 대한 죽음을 기록하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태양과 달을 멈춘 사건 (수 10:12-14)은 다분히 그를 신화적 인물로 여길수 있는 소지가 있다. 그래서 성서 저자는 여호수아의 죽음과 그의 묘지를 자세하게 언급한다. "이일 후에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일백 십 세에 죽으매 무리가 그를 그의 기업의 경내 딤낫 세라에 장사하였으니 딤낫 세라는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산 북이었었더라" (수 24:29-30).
사진: 엔게디의 산양
바르일란 대학 성서학과장인 아시스 선생님의 논문 "From Moses to Joshua and from the Miraculous to the Ordinary"에서 모세 오경에 등장하는 많은 기적들이 여호수아서로 넘어가면서 현저하게 줄어들게 됨을 지적한다. 이 역시 신화적인 요소들이 점진적으로 제거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모세와 여호수아의 공통점이 있다면 전혀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결국에는 "죽음"으로 그 생을 마감하였다는 점이다.
한편 엘리야 선지자의 삶은 모세와 자주 비교 대상이 된다. 모세가 40일을 시내산에서 금식하면서 하나님을 만났던 것처럼, 엘리야 역시 하나님의 산으로 가면서 40주야를 금식하였다. 모세는 홍해를 가랐고, 엘리야는 요단강을 갈랐다. 모세가 죽은 곳은 여리고 맞은 편 모압 땅에서 죽었는데, 엘리야 역시 여리고 맞은편에서 하늘로 올라갔다.
요세푸스와 미드라쉬에 의하면, 모세의 죽음에 의문 부호를 찍는다. 요세푸스는 모세가 구름속으로 사라져버렸다고 말한다. 바벨론 탈무드 역시 모세가 죽지 않았음을 언급한다. 토라는 모세의 죽음을 분명히 기록하였지만, 후대의 작품들은 모세의 죽음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무슬림들은 모세의 죽음에 대해 어떤 전통을 갖고 있을까? 무슬림들도 모세를 위대한 선지자로 인정한다. 이슬람 전통에 따르면, 모세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유대 광야에서 최후를 맞이하였다. 실제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 중간 즈음에 모세의 무덤을 성지로 만들어 놓고 순례객들이 방문을 하기도 한다.
본 글은 히브리대 야르 자코비치 교수의 글 "모세는 정말로 죽었는가?"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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