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탄생에 대한 기독교 전통들을 살펴 보면,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는 것들이 있다. 가장 흔한 예로, 동방에서 온 세명의 박사들 (wise men or magi)이 아기 예수께 경배를 드렸다는 것이다. 개정되기 이전의 찬송가 123장 “저 들밖에 한 밤중에”의 4절에는 “동방 박사 세 사람” 이란 가사가 있다. 아마, 박사들이 황금, 몰약 그리고 유황을 바쳤기 때문에 세 사람으로 추정하는듯 하지만, 성경에는 언급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예수께서 “말 구유 (마굿간)”에서 탄생하셨다는 전통 역시 성경적 근거는 없다. 물론 “구유(Manger)” 라는 표현이 나오지만 꼭 그 구유가 “말 구유”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1세기경 당시 일반 유대인들이 말을 사육하였는지는 매우 의심스런 일이다. 구약 성서 시대 당시 유대인들의 흔한 직업인 목축업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양, 염소, 그리고 나귀등이다. 말은 주로 전쟁이나 왕족들이 타는 (삼하 13:29, 왕상 1:33, 44, 18:5) 동물로 일반인들이 소유할 수 없는 아주 비싼 동물이었다.
히브리어로 구유를 אבוס (에부스) 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3번 구약 성경에 등장을 한다.
-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אבוס)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사 1:3)
- 들소가 어찌 즐겨 네게 복종하며 네 외양간 (אבוס) 에 머물겠느냐 (욥 39:9)
- 소가 없으면 구유 (אבוס)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잠 14:4)
헬라어로 구유를 Φατνη (파트네) 라고 하는데 신약에 4번 등장한다.
-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눅 2:7)
-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라 (눅 2:12)
-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눅 2:16)
-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눅 13:15)
이상의 성경적 예들을 보더라도, 말 구유 전통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곳은 외양간 혹은 양떼나 염소들의 우리일 수도 있다.
마굿간이라고 할때 집에서 일정 거리가 떨어진 곳에 만든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는 우리나라의 외양간이 집안에 있지 않다는 것과 서양, 예를 들면 미국의 마굿간이 집밖에 있다는 개념을 성경의 마굿간, 외양간, 혹은 양 우리에 적용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적용하는 것은 예수의 탄생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리아가 만삭이 되었을 때 베들레헴에 도착하였다는 것 역시 성경적 근거가 없다. 예수 탄생 기사가 자세히 기록된 눅 2:6을 주의 깊게 읽어보자. “거기 있을 그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While they were there)." 즉 이 말은 마리아와 요셉이 만삭의 때, 즉 출산 직전에 베들레헴에 도착하였다기 보다는 그 보다 상당 기간 앞선 때에 베들레헴에 와 있었다는 것을 엿 볼 수 있는 표현이다. 마리아와 요셉이 출발한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는, 당시 유대인들이 주로 이용하던 요단 동편길을 따라 온다면, 적어도 150 km 이상 걸리는 장거리 여행이다. 만삭의 여인이 이런 장거리 여행을 짧은 기일내에 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따라서 산모의 건강을 고려하였다면 요셉은 상당한 시간적 여유를 두고 베들레헴을 향해 출발하였을 것이고, 베들레헴에 도착한 후 적어도 며칠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난 뒤에 마리아가 출산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눅 2:7은 “첫 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는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는가? 마리아와 요셉이 상당 기간 베들레헴에 머물고 있었다면, 산모의 출산을 고려하여 그들은 장기 거처를 할 수 있는 곳에 머물고 있었어야 했다. 또한 베들레헴은 마리아와 요셉의 고향이다 (눅 2:3,4). 따라서 베들레헴에는 친족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 친족들의 집에 머물렀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만일 베들레헴에 그들의 친족이 전혀 없었다 하더라도, 유대 산골 (눅 1:39)에 살고 있던 친족 엘리사벳과 사가랴가 있었기에 마리아와 요셉이 장기적으로 거주할 방을 구하지 못하였다면, 엘리사벳의 집에 거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시 예수 탄생지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눅 2:7에 나오는 “여관”, 그리고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라는 표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성경 시대의 이스라엘 가옥 구조와 헬라어의 의미를 알아야만 한다. 잠시 구약 성서로 눈을 돌려보자. 히브리어로 여관은 מלון (말론, 헬라어 카탈루마)이다. 창 42:27에 보면 요셉의 형제들이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길에 "객점 (말론)"에 머물렀다. 수 4:8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건너 유숙(말론)하였다. 여기서 "말론"은 객점이라기 보다는 들판에 임시로 머물렀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말론, 카탈루마는 여관, 객점, 유숙하는 곳, 혹은 객실등의 뜻이 있으며 문맥을 잘 살펴서 뜻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
신약성서로 돌아가 보자. 한글 성경에는 여관으로, 그리고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Inn 으로 번역을 하였지만 신약성서에서 사용된 헬라어 καταλυμα (카탈루마)는 여관이라는 의미보다는 Guest Room 혹은 손님 접대용 방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신약 성서에 등장하는 카탈루마를 살펴보자.
- 어디든지 그의 들어가는 그 집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나의 객실 (καταλυμα)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 (막 14:14)
-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눅 2:7)
-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 (눅 22:11)
1번과 3번은 예수의 마지막 유월절 만찬 내용이며, 2번은 예수 탄생 기사에 나오는 것으로 모두 여관이 아닌 객실 (Guest room)을 뜻한다. 성서 시대의 카탈루마는 “객실”로서 여관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산지 높은 곳에 위치한 베들레헴은 지리적 특성상, 오고 가는 상인들이 머물만한 여관이 있을 곳이 못된다.
누가는 그의 복음서 10장에서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유대인을 구해주고, 그를 여관 (주막)으로 데리고 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때 누가가 사용한 헬라어는 πανδοχειον (판독세이온)으로 이 단어는 “여관 (주막)”을 뜻한다. 따라서, 눅 2:7에 “사관 (여관)”은 잘못된 번역이며, 객실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사진: 이스라엘의 가옥 구조 (출처: http://lukechandler.wordpress.com/2011/06/24/a-visit-to-the-semitic-museum-at-harvard/)
다음으로 “ 있을 곳이 없음…” 이라는 표현을 보자. 헬라어 τοπος (토포스)는, 여관방이 손님들로 가득 차서 빈방이 없다는 그런 의미가 아닌, 공간적 의미를 담고 있다. 즉 방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장소가 아이를 출산할 만한 공간이 못된다는 의미로 이해를 해야 한다. 혹, 여유 공간이 있다 하더라도 여러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 여자가 출산한다는 것은 적절치 못한 것이다.
성서 시대의 이스라엘 가옥 구조를 살펴보면, 왜 마리아가 구유가 있는 곳에서 예수를 출산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성서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집 안에 동물들이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을 두었고, 아래층에는 주로 주방과 동물 우리, 그리고 윗층에는 가족이 거주하는 방과 객실이 있었다. 물론 빈부 차이에 따라서 거주하는 공간의 넓고 좁음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발견된 1세기 경의 집터들을 보면 객실을 만들어 놓았던 증거들이 있다. 따라서, 마리아가 예수를 출산한 곳은 그녀가 거주하고 있었던 집 (눅 2:6 While they were there)의 아래층에 있는 동물들이 거하는 우리(Stall)가 이었다고 볼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대로, 마리아와 요셉이 출산을 하기 위해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며 빈 방을 찾았다? 여관방이 손님들로 가득 차서 들어갈 수 없었다?, 아니면 사람들이 마리아의 출산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메몰차게 그녀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마굿간에서 탄생하셨다? 라는 식의 말들은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는 잘못된 전통과 상상이 만들어낸 것들에 불과한 것이다.
예수께서 가장 천한 곳에서 탄생하였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위에서 언급한 비성경적인 전통들을 즐겨 언급하지만, “성경적 근거를 대시오!” 라고 한다면 과연 무엇에 근거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비성경적인 전통으로 예수의 탄생을 미화하거나, 과장한다면 이는 성경을 왜곡하는 것일 뿐이다. 그 분이 말 구유가 아닌 왕궁에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창조자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 분은 가장 낮은 곳으로, 그리고 가장 천한 곳으로 내려오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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