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의 세겔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계수 중에 드는 모든 자 곧 스무 살 이상 된 자가 여호와께 드리되 (출 30:13-14).
이스라엘 민족 절기인 유월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전국 각처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던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입교한 이방인들, 그리고 장사로 한몫 잡기 위한 장사꾼들의 발걸음 소리가 예루살렘 영문밖에서 점점 커지고 있었다.
예수와 제자들 역시 여리고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이른 아침부터 발걸음을 재촉하여 계곡길과 산지길을 따라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해수면보다 약 250미터나 낮은 곳에 위치한 여리고에서 800미터 가까운 산지에 있는 예루살렘까지 가는 약 30 킬리미터의 길은 하루만에 가기에는 무리였다.
예수 일행은 뽀얀 광야의 먼지 바람 옷을 벗고 봄 기운이 완연한 푸른 옷으로 갈아 입은 광야 골짜기 길을 따라 예루살렘과 여리고 중간 지점에 있는 허름한 여인숙에 도착하였다. 4월의 해는 이미 서산 너머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산 그림자 소리만이 광야를 감싸고 있었다.
순례자들은 행로에 지쳐 있었으나, 내일이며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도착한다는 들뜬 마음으로 거의 뜬 눈으로 그 밤을 보냈고, 이른 아침 어김없이 요단 동편 느보 산 정상에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아침 햇살을 등에 지고 예루살렘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예수 일행도 순례자들 틈속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갔고, 그 날 저녁 때가 거의 될 즈음, 예루살렘 성전이 보이는 올리브 산에 도착하였다. 올리브 산 정상에 올랐을 때 등 뒤로 뒤쳐져 있던 태양은 순례자들의 발걸음을 지나쳐 올리브 산 정상을 너머 성전 뒤에서 성전에 붉은 노을 옷을 입히고 순례자들을 맞이하였다.
예수는 나귀를 타고 성전 입성을 한 뒤, 어두움이 짙게 깔리기 전, 올리브 산 동편 베다니로 돌아와서 하룻 밤을 보냈다. 그 다음 날 아침 예수 일행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다시 들어갔을 때, 이미 성전 마당에는 순례자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여기 저기서 순례자들을 대상으로 돈을 바꾸고, 소, 양, 그리고 비둘기를 파는 상인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였다. 제사장들과 성전 경찰들은 성전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 날의 분위기를 살피고 있었다.
그때, 예수께서 갑자기 채찍을 만들어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엎고, 소와 양, 그리고 비둘기 파는 자들을 성전 마당에서 내쫓기 시작하였다. 이리 저리 뛰는 소와 양, 푸덕거리는 비둘기들, 엎어진 돈을 주워담는 환전상들로 인해 성전 마당은 아수라장이 되어 가고 있었다.
성전 마당에서의 환전이라??? 무슨 동전으로 환전을 하였을 까?
성서의 명에 따라 (출 30:13-4), 이스라엘의 20세 이상의 모든 남자는 예외없이 성전세로 반 세겔을 바쳤다. 그렇다면 예수 시대의 사람들은 어떤 돈을 성전세로 바쳤을까?
혹 이상하게 들릴수도 있겠으나, 당시 성전세로 바치던 돈은 로마 시대 당시 이스라엘 지중해 북쪽 두로에서 주조되었다. 이 주조된 동전을 Tyrian Shekel (두로 세겔) 이라 불렀는데, 약94%의 순도와 14.2 그램 정도의 은 동전이다. 원래 두로 동전은 주전 126-125년 사이, 그리고 주전 19-18년 사이에 주조되었으나, 로마 정부가 두로 동전을 더 이상 주조하지 않은 이후, 에루살렘에서 주전 18/17년에서 주후 69/70년 사이에 성전세 용도로만 주조되었다. 당시 예루살렘의 동전 주조업자들은 두로 동전에 새겨져 있던 헬라클레스의 초상과 독수리 문양이 있는 것을 그대로 주조하였다.
사실, 이것은 그 어떤 모양이나 형상을 새기지 말라는 십계명 말씀을 어긴 것이다. 그러나, 당시 랍비들은 성전세로 바치는 동전의 규정으로 동전의 순은 정도와 무게가 동전에 새겨진 형상보다 더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두로 동전은 신약성서에 적어도 세번 등장한다. 마태복음 17:24-27에 예수와 베드로가 성전세를 내기 위해 물고기를 잡아 그 입에 있는 동전을 성전세로 냈고, 마태복음 26:14,15에 가룻 유다가 예수를 팔고 받았던 은 30세겔 역시 두루 동전이었다. 그리고 성전 마당의 환전상들 역시 두로 세겔로 환전을 해 주었다.
참고로, 유대 문헌에는 당시 환전상과 희생제물로 쓰이는, 소, 양, 그리고 비둘기를 파는 상인들이 터무니 없는 환전 수수료를 받거나, 평소보다 비싼 가격으로 희생제물을 판매하였다는 내용의 글은 없다.
하나 더 추가하여, 성전 청소의 의미에 대해 N.T. Wright 는 성전 청소와 죄 사함의 문제를 연결하여 해석한다. 예수께서 병든 자를 치유한 뒤 종종, "소자여 네 죄 사함을 받았다" 라고 말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는 매우 파격적이고, 신성 모독적인 말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엄연히 성전이 존재하고, 그 성전에서의 속죄제를 통해 죄 사함을 받던 시대였는데, 성전의 속죄 기능이 건재함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그 자신의 권세를 가지고 죄 사함을 선포한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성전 청소는 훗날 성전의 파괴에 대한 예표이자, 속죄는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있다는 점을 보여준 행동이었다.
Wright의 말이 맞다면, 사도행전 2장과 4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설교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 사함을 선포한 것 역시 당시 당시에는 매우 파격적인 말이었다. 베드로가 죄 사함의 선포를 한 장소는 다름 아닌 속죄의 현장인 성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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