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창 12:10)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창 12:16)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창 13:1-2)
눈에 보이는 좋은 결과가 항상 하나님께서 주신 복은 아니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나던 날을 성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창 12:5)
사진: 텔 브엘세바 (이스라엘 네게브 지역)
창 12장5절의 히브리어 원문중 일부 내용이다. אשר עשו בחרן (곧 하란에서 얻은 것들). 아브람은 하란에 있을때 스스로 수고하여 재물을 얻었다. 그는 자신의 땀과 수고의 열매를 가지고 가나안땅에 입성하였다. 가나안은 그가 거주하였던 하란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척박한 땅이다. 아브람은 가나안 입성이후, 남방, 즉 네게브 지역까지 내려간다. 그러던 중 가나안의 심한 기근으로 인해, 그는 가족과 함께 나일강의 물줄기가 지나는 가장 비옥한 고센 지역(델타 평야)으로 내려간다.
이집트로 내려가던 중 아브람은 혹이라도 자신을 죽이고 아내 사래를 이집트인이 빼앗아 갈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선다. 궁여지책으로 이집트인들 앞에서 사래를 누이라 속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는 그녀를 자신의 궁으로 불러들인다. 덕분에 아브람은 바로로부터 많은 재물과 가축을 받는다.
중략하여, 아브람은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다. 이때 창세기 저자는 가나안으로 되돌아온 아브람에게 가축, 은, 금이 풍부하였다고 증언한다.
기근으로 인해 이집트로 내려갔으니, 아마 그의 손에는 보잘것 없는 작은 소유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돌아올때는 풍부하였다.
과연 아브람이 풍부해진것은 복이었을까? 결과만 본다면 빈손으로 갔다가 두손 가득 재물과 가축을 이끌고 돌아왔으니 그렇다! 라고 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가 얻은 재물은 하란에서 얻은 재물과 달랐다. 하란에서 그가 얻은 재물과 가축은 그의 땀과 수고가 베어있었다. 그것은 아브람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복이었다. 그러나 이집트에서 얻은 재물에는 그의 거짓말 표 딱지가 붙어 있다. 물론 악의적인 의도나, 불의의 이익을 얻고자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거짓말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인해 거짓말을 하였다. 나는 그가 거짓말 한것 자체를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그 거짓말로 인해 그가 얻은 것을 과연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다. 이 질문을 하게 된 이유는 최근에 읽은 한 책에서 아브람이 이집트에서 올라올때 재물의 풍부함을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고 주장하는 글 때문이다. 과정을 보지 않고 결과만을 보고 하나님의 복을 언급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아브람이 이집트에서 얻은 많은 재물과 가축은 좋은 것일지는 몰라도 옳은 것은 아니다. 그의 부유함을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라 말할수 없다. 어떤 이는 아브람에게 있었던 은, 금의 풍부함이라는 물질적인 복에 카메라의 엥글을 맞추겠지만, 성서 저자는 조카 롯과 헤어진 후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주신 언약에 엥글을 맞춘다.
사진: 텔 벧엘 주변
조카 롯과 헤어진 후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신다.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창 13:17)."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 보도록 하신다. 그리고 그 땅을 그와 후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신다. 아직 아브람의 손에 쥐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때 하나님이 주실 미래의 복은 이미 아브람의 손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좋은 결과에만 주목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십자가의 사람은 좋은 결과를 쉽게 하나님의 복으로 판단하고 따르는 이들을 따라 걷거나, 서거나 앉지 않는다. 십자가의 사람은 좋은 결과가 아닌 옳은 결과, 그것이 풍부이든 빈천이든, 그것을 하나님의 복이라고 고백한다. 더 나아가 십자가의 사람은 옳은 결과 뿐 아니라, 그 결과로 인도하는 과정 역시 선하고 옳아야 함을 믿고 추구한다.
혹이라도 섣불리 13장의 아브람의 손에 있는 풍부함을 하나님의 복이라고 여긴다면, 세상 사람의 다름이 없는 삶을 살아가면 억지로 지고 가는 십자가로 인해 어깨만 아픈 그런 삶을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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